원로 진보 지식인 중 김기협 선생이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이 옮긴 책 중 <역사의 원전>을 몇 년 전에 읽었습니다. 사료(혹은 어떤 문헌이든 간에)를 직접 맛보게 한 후 그에 대한 간략한 평을 곁들인 형식인데, 아 이런 책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당시에 받았더랬습니다. 그 책의 관점에 일일이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말이죠.이 책 역시 "사료"를 두고 "역사를 보는 눈"으로 규정한 후 그 사료를 통해 거대한 맥락을 찾는 시도를 합니다. 중견 역사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그 진용(앞에서 언급한 김기협 선생은 여기에 없습니다. 그분이 중국사 전공도 아니고)에도 눈길이 가거니와, 방대한 사료가 남아 있는 중국사에서 과연 어떤 자료를 취합했을지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두꺼운 책이라고 부담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미 중국사에 대해 프레임이 잡혀 있는 독자라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몰입할 수 있겠습니다.신분에서 능력 위주의 사회로 전환하는 데 일정 기여를 한 이가 위 무제(추존) 조조라고 하는데 우리가 중등 교육 과정에서 구품중정법의 도입자로 배운 바 있습니다. 본격 능력 위주의 인재 선발 시스템인 과거제는 이보다 한참 후에 등장하지만 여튼 이 정도만으로도 중국 사회가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큰 발걸음을 뗀 셈입니다. "능력" 위주로 가다 보니 "아 우리는 상당히 능력이 뛰어난데 왜 변방에서 오랑캐 취급만 받아야 하나" 라며 울분을 토한 오랑캐가 중원으로 대거 진입했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ㅎㅎ 이는 진조(晉朝)의 부패와 막장 행각의 덕을 보았을 뿐 그런 맥락에서 파악할 건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위-진조가 진행될수록 신분제, 귀족 가문의 위세가 더욱 고착되며 진조의 멸망은 신분제의 모순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오대에 들어서면 무인 정치의 폐해가 드러난다고 책은 규정합니다만 이는 이미 당대를 거치면서 현격화한 절도사의 전횡에서 유래한 현상이겠습니다. 무인들이 발호하면 자연 무용과 군략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밖에 없는데 후진(後晉) 왕조가 거란에 연운 16주를 바치면서 굴욕적 자세를 취한 것도 어쩌면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이 근시안적인 정책 탓에 후대에 이르기까지 내내 한간으로 욕을 들어먹는 게 그 개조 석경당입니다. 그런데 석경당은 그저 한 인간으로 관찰해도 비굴하고 신뢰가 없었던 인간 말종이었습니다.20기 11주차에 리뷰한 책은 "완안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인데 출판사 이름을 보고 현웃이 터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조의 개창자 아골타의 성(姓)이 "완안"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골타도 그렇고 훨씬 후대에 나온 누루하치도 그렇고, 그저 전장에서의 백전 명장일 뿐 아니라 자신의 휘하에 있는 신민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지 경세책에도 능했던, 멀리 볼 줄 아는 경영인으로서의 면모도 뚜렷했습니다. 그 증좌 중 하나가 이 책에서도 조명하는 "맹안 모극제"입니다. 이 역시, 중학교 과정은 아니고 고교 과정에서는 다루는 사항입니다.아무래도 이 책은 사적 위주로 역사를 짚다 보니 인물로 보면 현명한 이들의 현명한 선택과 전략이 자주 조명되며, 해릉왕 같은 멍청이는 거의 짚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어리석은 자, 못난 바보의 헛발질로부터 더 많은 교훈을 베풀기도 하죠. 이 책은 중국사에만 시선을 한정하지 않고 일본, 또 근래 지정학적으로 우리에게 부쩍 중요해진 동남아시아, 인도, 서아시아, 내륙아시아 등의 행적에도 약간의 분량을 할애합니다. 스토리보다 사료에 초점을 둔 편집과 편제라서 특히 역사 마니아들에게 주의를 끄는 책입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다. 는 말이 있다. 우리 몸에서 눈의 귀중함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몸’을 ‘역 사’로 바꾸면 ‘눈’은 ‘사료’가 될 정도로 사료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사료가 없이는 역사가 성립되지 않으며 사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역사에 대한 이해도 불가능하고 사료에 대한 이해 능력이 곧 역사 이해 능력의 기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역사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그 이유가 정치적이든 이념적이든 결국 해결의 열쇠를 역사 그 자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면 이 책이 그 과정에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 사료를 접하기 쉽지 않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좀 더 고민하도록 함으로써 역사의식이 제고되고 나아가 중등 역사 교육뿐 아니라 대학 역사교육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서구 중심적 역사 인식이나 중국 사 중심의 ‘동양사’를 넘어서서 다양하고 광대한 아시아사를 아시아사답게 이해하는 데도 이 책이 조금이라 도 이바지하길 바란다.
1. 중국 고대사_김병준
최초의 왕조 / 서주의 봉건제 / 의후측궤(宜侯??) / 춘추 시대 맹약 / 춘추 시대의 전쟁 / 서문표 일화 / 상앙 변법 / 제자백가 / 통일 전쟁의 필요성 역설 / 군현제의 실시 / 황제 칭호 / 분서갱유 / 진시황 각석 / 과진론(過秦論) / 항우와 유방 / 한대의 경기 통치책 / 이년율령 호률 / 사기의 체제 / 유교의 국교화 / 한 무제에 대한 평가 / 염철 논의 / 전한 초기 한과 흉노의 화친 관계 / 흉노의 독자적 풍습 유지 / 대외 팽창 정책의 조정 / 한대 국가 원리의 변화 / 한대의 인구 / 왕망의 정치 / 적미의 난 / 후한 광무제의 토지 조사 / 당고의 화 / 한대 호족의 등장 / 황실 재정과 국가 재정
2. 중국 중세사_하원수
중원으로 들어온 호족(胡族)들 / 후한 말 민중의 동요와 도교 교단의 성립 / 후한 말 군웅들의 할거와 유비(劉備) / 삼국(三國)으로의 분열과 조조(曹操)의 활약 / 서진(西晉)의 제도 정비 / 전란 속에서의 자립 집단 / 재력의 중요성 /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와 귀족 사회의 고착화 / 호족(胡族)의 성장과 서진의 멸망 / 전진(前秦)의 남진(南進) 좌절과 남북 대치 상황의 고착 / 북위 왕조의 호족(胡族)적 특성 / 북위의 균전제 / 북위 효문제의 한화 정책(漢化政策) / 북조 말 다시 강화된 호족(胡族)의 풍조 / 사인(士人)과 서인(庶人)의 구별 / 사인(士人)의 명망(名望) / 남북조 시기 풍속의 지역적 차이 / 불경의 한역(漢譯)과 불교의 발전 / 북조에서의 실용 기술 발전 / 중국의 분열과 고구려의 성장 / 서역(西域)과의 교류 / 호족(胡族)적 성격을 지닌 새로운 통일 제국 / 대운하의 건설 / 수나라의 흥성과 쇠퇴 / 당나라와 돌궐의 관계 / 당 태종 시기의 현실 / 당나라의 안정과 역사의 재정리 / 통일 제국의 법제 정비 / 당의 균전제(均田制) / 과거 제도의 출현과 전개 / 무주 혁명과 그 정치 / 당의 흥성과 쇠퇴 / 안사의 난과 당나라의 위기 / 번진(藩鎭)의 출현과 중앙 집권의 약화 / 양세법(兩稅法)의 시행 / 지주 계층의 성장 / 당나라 후기의 사회상 / 황소의 봉기 / 문벌 세력의 약화 / 중소 지주의 생활상 /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도 형태 / 도교와 불교의 융성 / 당나라 여성의 삶 / 당 후기 사상의 새로운 분위기 / 당나라 안의 신라인들 / 동서의 문화 교류
3. 중국 근세사1(송·원대)_이근명
오대 무인 정치의 폐해 / 송의 중국 통일 / 무인의 권한 삭감 / 황제권의 강화와 중앙 집권화 / 과거제의 개혁 / 거란의 건국과 연운십육주 영유 / 거란의 이중 지배 체제 / 전연(?D淵)의 맹(盟) / 서하의 건국 / 서하의 북송 침공 / 서하와의 맹약 체결 / 모역법 실시의 배경 / 왕안석의 이재 사상 / 신법의 시행 / 사마광의 신법 비판 / 사대부의 책임 의식(천하관) / 학문(과거 시험)을 통한 입시 출세 / 사대부의 정치 주도 / 사대부의 계층 유동성 / 구법당 내부의 분열 / 신법당의 재집권과 구법당 탄압 / 철종의 친정과 구법당 탄압 / 북송 말기 정치 기강의 이완 / 금 건국 이전의 여진국 / 완안아골타의 요 공격 / 금의 건국 / 맹안모극제 / 북송의 멸망 / 악비와 진회 / 근사록 의 편찬 / 주자학의 체계 / 농업 / 상업과 화폐 / 도시의 발달 등 / 몽골 초원의 통일 / 칭기스 칸의 즉위 / 몽골 제국의 건립 / 천호제의 재편 / 칭기스 칸 시기 / 우구데이 칸의 즉위와 대외 원정 / 쿠빌라이 시기의 남송 정복과 일본 원정 / 쿠빌라이와 아릭 부케의 대립 / 카이두의 반란 / 야율초재(耶律楚材)의 활동 / 대도(大都)의 건설과 지배 체제 확립 / 지폐의 사용 / 역참제와 시박사 등의 제도 / 서민 문화의 등장 / 인쇄술의 발달 / 과학의 발전
4. 중국 근세사2(명·청대)_원정식
주원장의 등장과 원말의 상황 / 주원장의 북벌 격문(1367) / 이갑을 편성하고 부역황책을 만들게 하다 / 토지 대장을 만들게 하다 / 어제대고를 반포하다 / 중서성과 승상 제도의 폐지를 조법으로 삼도록 하다 / 연왕 주체(朱?)의 쿠데타(정난의 역, 1399~1402) / 정화의 항해(1405~1433) / 명 전기 북변 방어의 취약성 / 명대 장성의 축조 / 등무칠의 난(1448~1449) / 명 중기 왜구와 중국인 / 장거정이 여섯 가지 정책 방향을 상주하다(1568) / 만력 연간의 당쟁 / 명 말 반란의 원인: 섬서의 흉년 / 누르하치, 일곱 가지 큰 원한을 제시하며 명나라와 전쟁을 시작하다(1616) / 청군의 강남 정복 과정: 양주의 참상 / 강희제, 과거 응시자들에게 현안 해결의 방법을 묻다 / 전국에 보갑제를 실시하다(1708) / 은의 지배가 시작되다: 은납화 / 고리대 상인과 농민 / 명 중기의 이농 현상 / 북방 변경의 삼림 남벌 / 명 말 수도로의 물자 운송과 대운하 / 중국의 공장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명 말 강남 지역의 농촌 수공업 / 방직 노동자들의 봉기[직용의 변(1601)] / 휘주의 상인과 사인 배출 / 과거 합격만이 신분 상승의 길이다 / 18세기 사치 풍조와 양주의 소금 상인 / 광동 해적들이 연맹을 결성하여 해상을 지배하다 / 19세기 초 차의 수출에 따른 산지 개발과 그 영향 / 서양 배의 광동 입항과 출항 절차 / 마음이 곧 이(理)이다(왕수인, 1472~1529) / 사치의 경제학(육즙, 1515~1552) / 군주 독재 제도 비판(황종희, 1610~1695) / 남녀평등 주장(유정섭, 1775~1840) / 고증의 원칙(염약거, 1636~1704) / 고증학자의 사회 비평(대진, 1724~1777) / 송학에 대한 비판(단옥재, 1735~1815) / 한학(漢學)에 대한 비판(초순, 1763~1820) / 역사 편찬학의 원칙(왕명성, 1720~1797) / 인구 증가는 비극이다(홍량길, 1746~1809)
5. 중국 근·현대사_김형종
서역에 행성을 설치하자는 논의[공자진(?自珍)] / 아편에 대한 단속이 심해질수록 폐단이 더 심해지니 응당 신속하게 변통하여 처리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허내제(許乃濟), 1836) / (은이)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엄밀히 막아 나라의 바탕을 북돋아야 합니다(嚴塞漏?以培國本疏)[황작자(黃爵滋), 1838] / 전표 유통에는 큰 장애가 없으니 응당 아편흡식을 무겁게 금지하여 폐단의 근원을 막아야 합니다[임칙서(林則徐), 1838] / 영국 국왕(빅토리아여왕)에게 보내려 한 격문(檄諭)의 원고[임칙서(林則徐), 1839] / 난징 조약(1842. 8. 29.) / 해국도지 서문[위원(魏源)] / (중·영) 톈진조약(1858. 6. 26.) / 태평천국의 토지 제도 / 태평천국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한 격문[증국번(曾國藩)] / 양식 철공소·기계의 설치에 대한 상주문[이홍장(李鴻章), 1865] / 만국 공법[윌리엄 마틴] / 서학 채용에 대한 논의[풍계분(馮桂芬)] / 해방(海防)과 새방(塞防) 및 관외 지역의 토벌 및 군량 운송 상황에 대해 다시 아룁니다[좌종 당(左宗棠), 1875] / 조선책략 [황준헌(黃遵憲), 1880] / 중·조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 / 의원(議院) 상(上) [정관응(鄭觀應)] / 시모노세키 조약(1895) / 홍콩 흥중회 장정[쑨원(孫文), 1895. 2. 21.] / 변법통의[량치차오(梁啓超), 1896] / 황제에게 올리는 여섯 번째의 상서[캉요우웨이 (康有爲), 1898] / 권학편 [장지동(張之洞), 1898] / 신축 조약(1901. 9. 7.) / 광서 신정 상유(1901. 1. 29.) / 정치학자 블룬츨리의 학설[량치차오(梁啓超), 1903] / 중국신보 서(敍) [양두(楊度), 1907. 1. 20.] / 민족적 국민[왕징웨이(汪精衛), 1905] / 중국 동맹회 혁명 방략(1906) / 흠정 헌법 대강(1908) / 중화민국 임시 약법(1912. 3. 10.) / 일본의 대중국 21개조 요구(1915. 1. 18.) / 경고 청년(警告靑年)[천두슈(陳獨秀), 1915] / 노라는 가출하여 어떻게 되었는가?[뤼신(魯迅), 1923. 12. 26.] / 북경 학생계 선언[1919. 5. 4.] / 조선 독립운동의 감상; 푸쓰녠(傅斯年), 조선 독립운동에서의 새로운 교훈[천두슈(陳獨秀)] / 문제와 주의를 다시 논한다[리다자오(李大釗), 1919. 8. 17.] /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 대표 대회 강령(1921. 7. 23. 러시아판의 번역) / 중국 공산당 제2차 전국 대표 대회 선언문(1922. 7.) / 중국 국민당 제1차 전국 대표 대회 선언[쑨원, 1924. 1. 23.] / 남경 국민 정부 외교부가 영사 재판권 철폐 문 제에 관해 영국의 주중국 공사에게 보낸 조회 (1929. 4. 27.) / 중화민국 훈정 시기 약법(1931. 6. 1. 공포) / 중국의 홍색 정권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가?[마오쩌둥(毛澤東), 1928. 10. 5.] / 이른바 중국 본위의 문화 건설 선언의 평가[후스(胡適), 1935. 3. 31.] / 청화대학 구국회에서 전국 민중에게 알리는 글 (1935. 12. 9.) / 중공 중앙의 국·공 합작 공포를 위한 선언[저우언라이(周恩來), 1937. 7. 15.] / 일본 파시즘에 대한 중국·한국·일본·타이완의 연대 투쟁 / 쌍십 협정(1945. 10. 10.) / 중국 인민은 일어섰습니다![마오쩌둥(毛澤東), 1949. 9. 21.] / 중국 인민 정치 협상 회의 공동 강령(1949. 9. 29.) / 중화 인민 공화국 토지 개혁법(1950. 6.) / 사령부를 포격하라-나의 대자보[마오쩌둥(毛澤東), 1966. 8. 5.] / 중국 공산당 중앙 위원회의 프롤레타리아 문화 대혁명에 관한 결정(1966. 8. 8.) / 네 가지 기본 원칙을 견지하자[덩샤오핑(鄧小平), 1979. 3. 30.] / 건국 이래 당의 몇 가지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1981) / 톈안문 민주화 시위와 단식 투쟁 / 남순 강화[덩샤오핑, 1992. 1. 18.~2. 21.]
6. 일본 전근대사_박수철
‘소국분립’의 일본 / 야마타이 국(邪馬臺國) / 야마토 정권과 왜 5왕 / 쇼토쿠 태자의 헌법 17조 / 개신의 조(詔) / 대불 건립과 도다이지(東大寺) / 반전제의 개편-삼세일신법(三世一身法)과 간전영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 / 헤이안 천도 / 섭관 정치 / 후지와라의 번영 / 국사(國司)의 가렴주구 / 장원의 기진 / 원정의 시작 / 승병 / 조헤이(承平)·덴교(天慶)의 난 / 헤이시(平氏) 정권 / 슈고·지토의 설치 / 조큐(承久)의 난 / 싯켄(執權) 정치-고세이바이시키모쿠(御成敗式目) 제정의 취지 / 가마쿠라 법령 / 몽골·고려의 일본 침공 / 가마쿠라 후기의 사회상-악당(惡黨) / 가마쿠라 불교와 사상 / 겐무(建武) 정권 / 반제령(半濟令) /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국서 / 도잇키(土一揆)와 잇코잇키(一向一揆) / 하극상의 사상 / 삼모작의 출현 / 오닌(應仁)의 난 / 아시가루(足輕) / 전국법(戰國法) / 총(鐵砲)의 전래 / 엔랴쿠지(延.史) 방화 / 다이코 검지(太閤檢地) / 무기 몰수령(가타나가리 령 刀狩令) / 무가제법도 / 천황·조정의 통제- 금중병공가제법도(禁中幷公家諸法度) / 농민 통제 / 쇄국령 / 생물 연민령(쇼루이아와레미령 生類憐みの令) / 독사여론(讀史餘論) / 교호(享保) 개혁-다시다카 제(足高制) / 교호(享保) 개혁-메야스바코(目安箱) / 다누마(田沼) 정치
7. 일본 근·현대사_박 훈
칸세이(寬政) 이학(異學)의 금지령 / 텐포(天保) 개혁과 도시 문제 / 오시오 헤이하치로(大鹽平八郞)의 격문 / 19세기 초의 러시아 위협론 /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해외 팽창론 / 새로운 근대 국가 구상 / 막부, 천황에 정권 반환 / 천황 정부의 수립 / 메이지 정부의 대외 화친 방침 / 메이지 정부의 국시 / 국회 설립의 요구 / 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의 식산 흥업에 관한 건의 / 아시아를 버리고 유럽처럼 되자! / 대일본 제국 헌법과 현행 일본국 헌법의 천황 관련 조항 비교 / 천황이 신민에게 주는 교육 칙어 / 주권선·이익선의 국방 구상 /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청·일 전쟁관 / 입헌 정우회의 설립 / 해외 팽창을 반대하는 목소리 / 타이쇼(大正) 데모크라시의 흥기 / 치안 유지법 / 동방 회의(東方會議)와 일본의 중국 정책 / ‘대동아 공영권’의 제창 / 히로히토 천황의 종전 선언 / 천황의 인간 선언
8. 동남아시아사_유인선
임읍(林邑, Linyi) / 부남(扶南, Funan) / 베트남 건국 설화: 홍방전(鴻龐傳) / 7세기 의정(義淨)의 수마트라 방문 /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 앙코르 왕조의 도성(都城; 앙코르 톰) / 람캄헹 대왕 비문(1292) / 평오대고(平吳大誥, 1427)-베트남이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강조 / 싱가포르의 성립(1819)(Raffles’ Letter to Colonel Addenbrooke. 1819년 6월 10일) / 영국의 말레이반도 식민화[1874년 1월 20일 빵꼬르 협약(Pangkor Engagement)] / 영국의 말레이반도 식민 경영(1896년 3월 Sir Frank Swettenham의 「말레이 통치」 연설) / 1826년 얀다보 조약(Treaty of Yandaboo; 미얀마 남부의 일부가 영국에 할양됨) / 태국 출라롱콘 왕(1868~1910)의 교육 개혁에 대한 선언문 / 제1차 후에(Hue) 조약(1883년 8월 25일)(프랑스의 베트남 식민 점령) / 근왕조(勤王詔, 1885년 베트남 황제가 프랑스군에 저항하기를 호소하는 글) / 까르띠니의 서한(1899)(인도네시아 민족주의의 맹아) / 판 보이 쩌우(潘佩珠)의 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 / 1932년 태국의 쿠데타 성명서(태국은 이로부터 입헌 군주제로) / 마젤란 관련 비문 / 싱가포르의 일본군 「군정총감 지시」(1942)(일본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청사진) / 1945년 호찌민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 독립 선언문 / 빤짜실라의 탄생(1945년 6월 수카르노의 연설: 인도네시아 국가 건설의 철학적 기반) / 1947년 빵롱 협정문(미얀마 諸民族의 통합) / 말레이시아로부터 싱가포르의 분리(1965) / 캄보디아 시아누크(Sihanouk) 왕의 저작 중에서(베트남에 대한 적대감) / 1973년 파리 평화 협정(베트남 평화 협정)
9. 인도사_이지은
고대 인도인의 시간과 역사관 / 아리안 사회의 목축 / 기원전 6세기경의 16대국(Mahajanapada) / 고대 인도의 공화제 전통 / 마우리야 제국의 재무 행정 / 다르마에 의한 고대 제국의 통치 원리 / 고대의 상공업 길드와 투자 / 고대 신분제 사회 / 굽따 시대의 토지 수여 / 후기 굽따 시대의 군사와 세무 행정 / 후기 굽따 시대의 영토와 세력 / 마흐무드 가즈니의 인도 침략 / 11세기의 상속 관습 / 11세기 남인도 촐라 왕국의 판도 / 13세기의 여성 술탄 라지야(Raziya, 재위 1236~1240) / 술탄 시칸다르 로디 시대의 치세와 자선 / 빠니빳 전투(1526) / 무갈 시대의 관료제-만삽 제도 / 토지의 등급과 토지세, 기타 세금 / 비자야나가라의 위용 / 영국과 인도의 공식 상업 관계 시작 / 17세기 무갈 제국의 무역 관계 / 1765년 동인도 회사의 벵골 조세권 확보 / 1857년 항쟁 / 1857년 항쟁 이후의 정치적 변화 / 부의 유출과 인도의 빈곤 / 인도 국민 회의의 성립 / 인도의 스와라즈(Hind Swaraj) / 지방 정부의 권한과 지방 입법부 신설 / 카스트의 철폐 / 파키스탄 선언 / ‘인도에서 손을 떼라!’- 인도 철수 운동 / 자유 인도(Azad Hind) 임시 정부 선언문 /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 독립 인도가 나아갈 길 /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과 방글라데시의 탄생 / 신경제 정책(1991)
10. 서아시아사_이은정
꾸란의 開經章(Surah al-Fatihah) / 하디스(had.th)(알 부하리) / 하디스(무슬림) / 제3대 칼리프 우스만의 죽음(알 타바리) / 튀르크 인의 미덕(알 자히즈) / 십자군 전쟁의 이유에 대한 무슬림들의 생각(이븐 알 아시르) / 몽골 침략의 참상(이븐 알 아시르) / 오스만 제국의 창업군주 오스만 가지의 꿈(아식파샤자데) / 콘스탄티노플의 정복(투르순 베이) / 퀴췩 카이나르자 조약(1774) /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알 자바르티) / 발타 리마느 조약(영국·오스만 통상 조약) / 귈하네(장미원) 칙령 / 에르네스트 르낭의 이슬람 비판에 대한 자말 앗딘 알 아프가니의 반박 / 청년 튀르크 망명자의 일본과 오스만 제국 비교: ‘터키와 일본’ / 밸푸어 선언 / 독립 전쟁 회고록(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누툭) / 1961년 12월 23일 승전 기념일에 포트 사이드(Port Said)에서 가말 압둘 나세르가 한 연설 / 이슬람적 정부(아야톨라 호메이니) / 미국에 대한 지하드(오사마 빈 라덴)
11. 내륙아시아사_정재훈
헤로도토스의 스키타이에 대한 기록 / 흉노의 습속과 정치 체제 / 한대 장건의 서방 여행과 교통로 / 돌궐이 유목 세계를 통합하려고 차용한 다양한 건국 신화 내용 / 돌궐과 로마의 교섭(사산조 페르시아, 에프탈, 그리고 서돌궐) / 소그디아나와 소그드 상인 / 현장의 여행길: 소그디아나로 가는 길과 서돌궐의 하영지 / 돌궐의 과거 기억과 유훈 / 위구르 초기의 정치 체제 / 위구르 정주적 요소 수용과 견마무역 / 위구르의 마니교 수용 / 토번의 정치 체제와 습속, 그리고 당조와의 혼인 관계 / 10세기 고창 위구르 왕국에 대한 왕연덕(王延德)의 여행기 / 요대(거란) 황제의 계절 이동 / 칭기스 칸 등장 이전의 몽골에 대한 기록 / 우구데이 칸의 잠치(역참) 설치 / 몽골 제국이 만들어 낸 세계사: 集史 의 저술 동기 / 티무르조 샤 루크와 명조 영락제의 외교 교섭 / 모굴한국 최초의 군주 투글룩 티무르의 이슬람 개종 내력 일부 / 17세기 전반 오이라드시기 티베트 불교의 몽골 전파 / 18세기 청조의 동투르키스탄(신강 新疆) 점령과 지배 / 1864년 신강(新疆)의 회민(回民) 반란과 야굽 벡 정권, 그리고 신강성 건성 /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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